KSR 유연성 vs EPO Could-Would, 어느 진보성 기준이 더 정확한가

같은 발명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정반대의 운명을 맞이하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다. 미국에서는 자명하다는 이유로 무효화된 특허가, 유럽에서는 진보성을 가진다고 유지되는 일이 매년 수백 건 발생한다. 그 핵심 원인은 자명성·진보성 판단의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 이다.

미국은 2007년 KSR International Co. v. Teleflex Inc. 판결로 연방순회항소법원(Federal Circuit)의 엄격한 TSM 테스트를 완화하고 유연한 상식 기반 분석으로 전환하였다. 유럽 특허청(EPO)은 1984년 T 2/83 결정 이래로 Could-Would 접근법을 더욱 엄격한 방향으로 진화시켜 왔다. 두 접근은 같은 자명성을 묻지만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본 글에서는 두 기준을 예측 가능성, 후견 편향 통제, 실증 데이터, 발명 현실 반영 의 네 가지 축으로 정면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정확한 진보성 판단을 만드는가” 라는 질문에 정직한 답을 시도한다.


1. 출발선의 비교 — 두 체계의 법적 토대

항목미국유럽
법령35 U.S.C. § 103 (Nonobviousness)EPC Article 56 (Inventive Step)
기본 판례Graham v. John Deere (1966)T 2/83 (1984)
이전 기준TSM 테스트 (Federal Circuit, 1980-2007)Problem-Solution Approach (EPO, 1980s~)
현행 기준KSR 이후 유연한 분석 (2007~)Could-Would 접근법 (강화)

두 체계 모두 “통상의 기술자가 보기에 자명하지 않은가” 라는 동일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차이는 그 질문에 답하는 방법에서 발생한다.


2. KSR 이전 — TSM 테스트의 엄격함

1980년대 초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후견 편향(hindsight bias)을 막기 위해 TSM 테스트(Teaching, Suggestion, or Motivation Test) 를 정립하였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특허가 자명하다고 무효화되기 위해서는, 선행기술 내부에 또는 문제의 본질에 또는 통상의 기술자의 지식에 명시적인 가르침·시사·동기가 존재해야 한다.”

이 기준은 유럽 EPO의 Could-Would 접근법과 거의 동일한 정신을 미국 실무에 도입한 것이었다. 두 체계는 사실상 수렴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7년, 모든 것이 바뀐다.


3. KSR 판결의 충격 — 유연성의 도입

KSR International Co. v. Teleflex Inc., 550 U.S. 398 (2007)에서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Federal Circuit의 TSM 테스트가 너무 경직적이라고 판시하였다. Kennedy 대법관의 의견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3-1. Federal Circuit의 4가지 오류

대법원은 Federal Circuit이 다음과 같은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하였다.

  1. 문제 범위 한정의 오류“특허권자가 해결하려 한 문제만” 들여다보는 오류
  2. 선행기술 결합 범위 한정의 오류동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선행기술만 결합 대상으로 보는 오류
  3. “Obvious to try” 배제의 오류“시도 가능했다”는 것만으로는 자명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는 결론의 오류
  4. 후견 편향 회피의 과도한 엄격함상식에 의존할 수 있는 경로 자체를 차단하는 오류

📚 KSR Int’l Co. v. Teleflex Inc., 550 U.S. 398, 419-421 (2007).

3-2. 새로운 기준 — “확장적이고 유연한(expansive and flexible)” 분석

KSR은 TSM 테스트를 완전히 폐기하지는 않았으나, “유용한 보조 기준”으로 격하시키고 다음을 새로 도입하였다.

  • 상식과 일반 창의성(common sense and ordinary creativity) — 통상의 기술자는 자동 기계가 아니라 일반적 창의성을 가진 사람
  • 시장 압력과 설계 요구(market pressure and design need) — 발명의 동기가 시장 자체에 존재할 수 있음
  • “Obvious to try”확인된, 예측 가능한 해결책의 유한한 수 안에서 시도한 결과라면 자명할 수 있음
  • 합리적 성공의 기대(reasonable expectation of success) — 시도가 성공할 합리적 기대를 동반했다면 자명

📚 KSR, 550 U.S. at 415-422; USPTO MPEP § 2141 (KSR Examination Guidelines).

이 변화의 의미는 결정적이었다. 이제 미국 심사관과 법원은 선행기술 내부의 명시적 동기 없이도 자명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4. EPO의 정반대 방향 — 더 엄격해진 Could-Would

흥미롭게도 EPO는 같은 시기에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2019년 11월 EPO Guidelines G-VII, 5.3 개정은 Could-Would 분석에서 “hope of solving”이라는 표현을 삭제하였다. 이제 자명성 부정을 위해서는 “expectation of some improvement or advantage”만이 인정된다.

  • 변경 전: 통상의 기술자가 해결의 희망(hope) 속에서 또는 개선의 기대 속에서 선행기술을 수정했을 것이면 자명
  • 변경 후: 통상의 기술자가 기술적 근거에 기초한 개선의 기대(expectation) 속에서 수정했을 것이면 자명

즉 EPO는 자명성 부정의 문턱을 한 단계 더 높였다. 단순한 희망 수준의 동기로는 더 이상 진보성을 부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EPO Guidelines G-VII, 5.3 (November 2019 revision); Kluwer Patent Blog, “Hope or no hope in inventive step” (2020).

두 체계는 2007년 이후 정반대로 분기하였다. 미국은 유연화 방향으로, 유럽은 엄격화 방향으로.


5. 실증 데이터 — KSR은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

이 분기가 단순한 수사적 차이에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정량적 증거가 누적되어 있다.

5-1. Mojibi (2010) — 자명성 무효율 증가

Albany Law Journal에 발표된 실증 연구는, KSR 판결 이후 연방순회항소법원과 지방법원 모두 특허를 자명하다고 판단할 확률이 유의하게 증가하였음을 입증하였다.

5-2. Sung et al. (2013) — 생명공학 분야 정량 분석

Drug Discovery Today에 발표된 분석은 더욱 충격적이다.

  • KSR 이전: 자명 판결 비율 0.42 / 비자명 판결 비율 0.47
  • KSR 이후: 자명 판결 비율 0.62 / 비자명 판결 비율 0.28

📚 Sung LM, Coffman LA. (2013). PMC3981861.

자명성 인정 비율이 48% 증가하였고, 비자명성 인정 비율이 40% 감소한 것이다.

5-3. Rantanen (2013) — Federal Circuit의 deference 증가

Iowa Law School의 Rantanen 교수가 15년치 Federal Circuit 판결을 분석한 결과, KSR 이후 Federal Circuit이 지방법원의 자명성 판단그대로 받아들이는 비율이 유의하게 증가하였다. 즉 항소심에서의 재심사 강도가 약해졌다는 의미이다.

종합하면 KSR은 수사적 차원의 변화가 아니라 실제로 더 많은 특허를 무효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6. 평가의 네 가지 축

이제 본질적 질문에 답할 차례이다. 어느 쪽이 더 “정확한” 진보성 판단인가? 답은 “정확”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층적이다.

축 ① — 예측 가능성 (Predictability) → EPO 우세

EPO의 3단계 PSA는 구조화된 알고리즘에 가깝다. 1단계(가장 가까운 선행기술), 2단계(객관적 기술적 문제), 3단계(Could-Would)는 동일 사실관계에서 동일 결론을 산출할 가능성이 높다. 변리사는 출원 단계에서 결과를 모델링 할 수 있다.

반면 KSR의 “확장적이고 유연한” 분석은 심사관마다, 판사마다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Holte & Sichelman (2023)의 연구는 지방법원 간 자명성 판단의 편차가 KSR 이후 확대되었음을 보고하였다.

축 ② — 후견 편향 통제 (Hindsight Bias) → EPO 우세

Mandel 교수의 실험심리학 연구는 후견 편향이 자명성 판단에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동일한 발명을 발명 전발명 후에 평가하게 했을 때, 자명성 판단 비율이 24% → 71% 로 폭증한다는 결과는 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EPO의 Could-Would는 동기를 선행기술 내부에서만 발굴할 것을 요구하여 후견 편향을 구조적으로 차단한다. 반면 KSR의 “상식·시장 압력·일반 창의성”은 심사 시점의 사후 인식이 분석에 흘러들 통로를 열어준다.

📚 Mandel GN. Patent Forecasts and Patent Hindsight (2006); Lunney & Johnson, “Patently Non-Obvious” (2012).

축 ③ — 발명 현실에의 부합 (Real-World Invention) → KSR 우세

그러나 KSR의 유연성에는 현실적 미덕이 있다. 실제 발명은 종종 시장 요구·설계 압력·예측 가능한 해결책의 시도에서 탄생한다. 명시적인 가르침이 없어도 통상의 기술자는 조각을 맞추듯이 결합할 수 있다. Kennedy 대법관이 “퍼즐 조각(puzzle pieces)” 이라는 비유를 사용한 이유이다.

EPO의 엄격한 Could-Would는 때때로 진정으로 자명한 결합도 진보성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낮은 품질의 특허가 시장에 누적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축 ④ — 출원인 친화성 (Applicant-Friendliness) → EPO 우세

순수히 출원인의 관점에서는 EPO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동일한 발명을 유럽에서는 등록받고 미국에서는 무효화되는 사례가 누적되는 이유이다. 다만 이것이 “좋은 특허 제도”인지는 별개의 논의이다.


7. 결론적 평가 — “정확함”의 다층성

기준더 정확한 쪽
예측 가능성EPO
후견 편향 통제EPO
발명 현실 반영KSR
출원인 친화성EPO
부실 특허 차단KSR
국제 조화(양쪽 모두 미흡)

객관적으로 정리하면, EPO의 Could-Would는 방법론적 엄밀성에서, KSR의 유연한 분석은 결과의 정확성에서 각각 우위를 가진다. “재현 가능한 절차”라는 의미의 정확함에서는 EPO가, “진정으로 자명한 발명을 걸러낸다”는 의미의 정확함에서는 KSR이 우월하다.

다만 학계의 다수 의견은 방법론적 엄밀성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 후견 편향은 인간 인지의 보편적 결함이며, 이를 막는 구조적 장치는 모든 진보성 판단의 신뢰성을 보장하는 전제이다.
  • 예측 가능성발명가의 출원 결정·투자 결정·소송 결정 모두의 기초이다.
  • 진정으로 자명한 발명도 EPO 체계에서 심사관의 정밀한 동기 분석을 통해 충분히 걸러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EPO의 Could-Would 접근법이 진보성 판단의 방법론적 모범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KSR은 현실적 유연성을 강조했지만, 그 대가로 예측 가능성과 후견 편향 통제라는 더 근본적 가치를 일부 양보하였다.


8. 한국 출원인의 전략적 함의

시나리오권장 전략
글로벌 출원명세서를 EPO PSA 친화적으로 작성. 이는 미국에서도 2차 고려사항(secondary considerations) 입증에 활용 가능
미국 특허 무효 방어유연 분석에 대응한 secondary considerations — 상업적 성공, 모방, 장기 필요, 예상치 못한 결과 등
유럽 특허 무효 방어기술적 효과의 구체적·기술적 근거 입증 — “hope”는 더 이상 인정되지 않으므로 기대기술적 토대를 명세서에 미리 매설
이중 등록 전략동일 발명을 EPO와 USPTO에 동시 출원해 어느 한쪽이라도 등록 가능성 확보

9. 마치며

“어느 쪽이 더 정확한가” 라는 질문은 결국 “진보성 판단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라는 더 근본적 질문으로 환원된다. 무효 가능성을 최소화하여 발명가에게 예측 가능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면 EPO 접근법이, 부실 특허를 걸러내어 공중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목표라면 KSR 접근법이 더 적합하다.

두 체계의 분기는 진보성 판단이라는 동일한 문제에 대한 두 가지 다른 가치 선택의 결과이며, 그 분기는 가까운 미래에 수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후견 편향이라는 인지적 결함을 제도가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라는 측면에서, EPO의 구조적 접근이 방법론적 우위를 보유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 본 글은 일반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글로벌 특허 전략은 각 관할별 전문 변리사·변호사의 자문을 통해 결정하기를 권한다.


📎 참고 자료

  1. KSR International Co. v. Teleflex Inc., 550 U.S. 398 (2007).
  2. Graham v. John Deere Co., 383 U.S. 1 (1966).
  3. T 2/83, Technical Board of Appeal, EPO (1984).
  4. 35 U.S.C. § 103 (Conditions for patentability; non-obvious subject matter).
  5. European Patent Convention, Article 56 (Inventive Step).
  6. USPTO MPEP § 2141, Examination Guidelines for Determining Obviousness Under 35 U.S.C. 103.
  7. EPO Guidelines for Examination, Part G-VII, Inventive Step (March 2024 Edition; November 2019 revision).
  8. Mojibi, A. (2010). An Empirical Study of the Effect of KSR v. Teleflex on the Federal Circuit’s Patent Validity Jurisprudence. Albany Law Journal of Science and Technology, 20(3), 101.
  9. Rantanen, J. (2013). The Federal Circuit’s New Obviousness Jurisprudence: An Empirical Study. SSRN 2210049.
  10. Sung, L. M., & Coffman, L. A. (2013). Identification of the factors that result in obviousness rulings for biotech patents. PMC3981861.
  11. Holte, R. T., & Sichelman, T. (2023). Cycles of Obviousness. Iowa Law Review.
  12. Mandel, G. N. (2006). Patently Non-Obvious: Empirical Demonstration that the Hindsight Bias Renders Patent Decisions Irrational. Ohio State Law Journal.
  13. Lunney, G. S., & Johnson, C. T. (2012). Patently Non-Obvious II: Experimental Study on the Hindsight Issue. Yale Journal of Law and Technology.
  14. Kluwer Patent Blog (2020). Hope or no hope in inventive step, that is the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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